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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년이 지났다. 일년 더 기다리고싶지 않다는 이유로 누나에게 차인 내가 이제는 전역을 이틀 앞두고 있다.

남들은 군대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힘든 훈련이나 선임들의 괴롭힘을 꼽지만, 나는 1년 9개월의 군생활동안 누나와의 헤어짐이 가장 힘들었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았던 우리의 만남이 그렇게 비참한 결말을 맺을거라곤 누나와 내 친구들도, 주인공인 우리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들 운명이라고 그랬으니까.

나는 정말 누나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난 나한테 못된짓을 참 많이했는데 난 정말 바보같이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고만 했다. 우리의 연애에서 누나는 철저한 갑이었고 나는 철저한 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가 지속될수록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갔다. 난 누나의 입맛대로 맞춰진 호구에 불과했다.

누나가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낸 그날 밤에도 난 끝까지 누나를 믿었다. 왜냐하면 누난 나한테 운명이었으니까. 결국 믿음의 결과로 돌아온건 부대로 복귀하는 버스안에서 카톡으로 받은 이별통보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힘들었던건 속으론 진짜 죽고싶다고 수십번씩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했다는거다. 조금이라도 티를 내면 관심병사가 될게 뻔했으니까.

다행히도 죽고싶다는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선 내 가족, 친구, 전우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당하기만 하다 버려진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었다. 이별의 상처를 견뎌내기 위해 할 수 있는건 뭐든 열심히했다.

분대장도 달고 포상을 딸 수 있는거라면 뭐든 최선을 다했다. 매일 저녁마다 열심히 운동했고 남는 시간에는 자격증 공부를 했다. 하루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늦은 밤 몰래 혼자 북카페에서 공부하다 걸려 휴가를 짤린적도 있었다.

그렇게 다시 일년이 지나고 전역을 이틀 앞둔 난 꽤나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입대하기전 요리의 요자도 몰랐던 내가 조리병으로 근무하면서 이제는 수십 가지의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60키로밖에 안되는 멸치였던 내가 이젠 70키로를 조금 넘는 근육질 몸이 되었다.

자격증도 목표했던 3개는 아니었지만 2개를 따서 덕분에 포상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 가장 크게 얻은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정말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거다.

누나와 난 이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있다. 나는 내년에 복학하는 휴학생에 불과하지만 누난 이미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회인이다. 내가 누나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려면 앞으로 족히 몇년은 더 걸릴것이다.

처음 누나와 헤어지고나서는 어떻게든 내가 잘 돼서 누날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나를 위해서, 내 인생과 목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누나에게 했던 말대로 앞으로 다시는 우연히라도 누나와 마주치고싶지 않다. 하지만 정말 혹시라도, 우연히 누나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그 땐 왜 그랬냐는 원망보다는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날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1년 9개월. 사회와 단절된 채 멈춰있던 시간 속에서 누나 덕분에 많은 걸 얻어간다. 힘들었던 군생활 속에서 좌우명이 된 세마디를 끝으로 이 글을 마친다. 나 자신을 사랑하자. 노력하자. 그래서 멋진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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